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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그림책에 대해

by 김가오니 2024. 3. 24.

오늘은 박완서 작가님의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부터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와 최근에 출간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까지 이 분 특유의 문체를 참 좋아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작가님을 알고 나서 그림책도 있다는 사실에 참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만났던 그림책은 <7년 동안의 잠>이었습니다. 초등 1학년 1학기 국어활동 교과서 수록도서이기도 한 이 그림책은 찰나의 삶을 위해 7년여 동안 땅속에서 지낸 매미 애벌레를 발견한 개미들의 이야기입니다. 애벌레에서 탈피해 어른 매미가 되기까지 매미의 끈기와 노력, 그리고 개미들의 갈등과 고민을 잘 풀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어쩌면 어른들까지 위한 그림책을 출간한 것에 대해 독자로서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박완서 작가님의 다른 그림책들도 눈에 담게 되었고 그중 오늘 두 권을 소개합니다.

 

 

  • 노인과 소년

 

 

2015년 현북스 출판사에서 발행 되었습니다. 표지에는 박완서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얼굴을 본인의 손으로 감싸고 있는 옆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조그마한 아이의 두 손이 뻗어져 있습니다. 아주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아이의 조그마한 두 손을 엄청 사랑스러워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 <호미>에 실린 [운수 안 좋은 날]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펼쳐 면지를 지나 첫 페이지에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듯한 모습의 할머니가 그려져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간 이 할머니는 지하철 안에서 불쾌한 일을 경험합니다.

 

노약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 옆자리에 아이 손을 잡고 탄 엄마가 앉습니다. 너덧 살 돼 보이는 조그마한 아이,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기보다는 손만 유심히 바라봅니다. 아마도 자신의 손과 다른 주름이 많은 할머니의 손이 신기한가 봅니다. 역시나 아이는 할머니에게 손에 왜 이렇게 주름이 많으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손의 주름 이야기부터 시작해 미주알고주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할머니 손에 낀 반지에 아이가 관심을 보이며 반지를 만지기 시작하고 아이에게 반지를 보여주려 반지를 슬쩍 빼는 시늉까지 하는 할머니는 금세 자신의 반지에 대한 추억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추억 속에서 깨어나 보니 아이에게 반지를 건네주려는 순간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서 자리에서 일어나버립니다. 낯선 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싫었던 것인지 아이 엄마의 행동에 할머니는 상처를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아이에게 인사도 건네지 못합니다.

 

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보니 우리의 손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저는 두 손으로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손에게 참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자신에게 있는 손에 대한 추억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노인과 소년

 

2017년 어린이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박완서 선생님이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써낸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수록된 짧은 소설입니다. 판화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니 철학적인 느낌으로 더 다가왔던 그림책입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한 노인과 한 아이가 새로운 고장을 향해 낯선 길을 정처 없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심과 무지가 불러온 전염병으로부터 살던 땅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새로운 터전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곳은 노인과 소년이 꿈꾸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빽빽한 공장, 그 공장의 매연, 거짓을 강요하는 임금이 지도자인 사회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 곳에서 살 수 없음을 느낀 노인과 소년은 다시 또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미 날은 저물었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 나갑니다. 노인은 순수함과 풍요로운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참된 곳에서 소년이 미래를 펼치며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과연 노인의 바람을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노인과 소년은 언제쯤 기나긴 여행을 끝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탈무드>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삶의 가치와 인간다운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인간들에 의해 동식물이 죽어가고 자연이 파괴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자연에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보이는 사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훼손되어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노인과 소년은 자신들만의 꿋꿋한 가치를 가지고 걸어나갑니다. 그 단단한 모습을 보니 그들이 원하는 티 없이 맑은 자연, 거짓이 아니라 참말이 인정받는 사회, 인간성을 회복한 사회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입니다. 우리 모두 노인과 소년처럼 자신만의 올바른 가치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렇게 두 권의 그림책을 만나니 박완서 라는 한 사람에 대해 더욱 애정이 생깁니다. 자신만의 가치로 묵묵히 오래 글을 써온 사람이라 그런지 모든 글에 뚝심이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글에서도 느껴지고 저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 가치를 잃지 말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유아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는 <노인과 소년>이기도 하지만, 우리 어른들에게 충분히 많은 공감과 깨달음을 주는 그림책임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내 '손'을 조금 더 사랑해주고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칩니다.